스포) 장문) 엣지러너 2기에 대한 소감

4년 전, 2022년에 공개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그야말로 혁신작이었다.
'high tech, low life'라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의 핵심적 철학으로 인해
고도화된 기술 문명에 비해 인류 문명이 놓쳐버린 인간성의 대비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을 한번 쯤 생각해보게끔 만들었으며
그 답을 데이비드와 루시라는 두 캐릭터 간 관계로 해답을 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경이로운 사운드트랙과 특이하고도 강렬한 시각적 연출이 더해져
엣지러너는 그 해의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했다.
4년이 지나 우리는 다시 나이트시티로 돌아왔다.
메가코퍼레이션의 더러운 일을 맡지 않으면 행복한 삶 따윈 꿈꿀 수 없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에서 아련한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그렇다면 CDPR은 이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기술 문명의 고도화로 사람의 목숨은 더 이상 천금과 같지 않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져 행복한 삶 따위 쉽게 바랄 수도 없으며,
사랑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 시대, 자극을 원하면 뇌에 직접 자극을 주는
브레인댄스 따위로 얼마든지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로만은 여전히 영화를 촬영한다.
'지금 팔리는 건 BD다. 영화가 아니라'
라는, 필름을 취급하는 사장의 한물 간 잔소리에 로만의 답은 명확했다.
'BD로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어요.'
'BD에는 경계가 없잖아요. 저곳(영화)과 이곳(관객)의 경계가.'
'좋은 영화는, 그 경계를 뛰어넘게 해요.'
'분명히 스크린은 있지만, 그 경계를 잊게 만들죠.'
'처음부터 없으면 그럴 수 없어요.'
이 대화를 통해 작품은 처음부터 로만의 역할을 '순수함'으로 강조하고 있다.
열두 살 어린아이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세상의 자극에 물들여지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내놓을 수 있는 답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소년의 주장에 따르기라도 하듯,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장면들은 대부분
로만이 든 카메라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전작 엣지러너가 데이비드와 루시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면
엣지러너 2는 로만이 '카메라에 무엇을 담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처음에 로만이 카메라로 촬영했던 것은
위크 킹즐리의 폭주, 탈리아 양의 곡예, D의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미소 등
메가코프의 돈과 기술 대신 나이트 시티가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였으나
시리즈 내내 핵심적으로 강조되는 '카프리'란 정체불명의 소녀,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스터리한 샤드를 중심으로
로만의 카메라는 점점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진다.
'좋은 영화는 경계를 뛰어넘게 만든다'는 로만의 주장에 동의라도 하듯
BD 따위의 자극에 길들여져버린 나이트 시티의 폭도들은
아라사카에 대한 복수심과 카프리로 인한 만능감으로 점점 미쳐가는 D의 광기에 편승해
그 광기를 촬영한 로만의 영상에 감화되어 거대한 불길로 번진다.
나이트 시티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던 로만의 영상은
D가 아라사카를 사냥하고, 그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합세하여 광기에 절여진 테러리스트나 다름없어졌을 때
D의 열렬한 팬을 자처했으나 사실은 D의 폭력을 찬양했을 뿐인 유피의 심드렁한 반응처럼
그리고 시리즈 후반부로 갈 수록 로만의 영상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역설적으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BD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로만은 그 시점부터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지만, 단 한 번 웃는 장면이 탈리아 양과의 자동차 극장 데이트다.
이 때만큼은 로만이 웃으며 영화를 감상하고, 탈리아와 놀면서 서로를 카메라에 찍어준다.
경찰을 총으로 쏴 죽이고, 화염병을 던지고, 차를 터트리며
무관계한데도 무서워 떨고 있는 여자를 죽이고, 아무 상관 없는 행인의 뇌를 태워죽이며
정당해보이는 광기, 정당해보이는 비난에 편승해 그저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싶어하는
자극적이고 또 폭력적인 군중의 폭력과 세상의 민낯을 보고도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는 복고풍이었고, 차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고철이고
영사기조차 '이런 게 아직도 남아있었냐' 할 만큼의 질려버린 옛 부산물이지만
탈리아와 로만 만큼은 강렬한 자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지루한 그 영화를 보고
서로의 카메라 속에서 웃었다는 묘사는
어쩌면 강렬한 자극에 중독되어 도시 전체가 바디 호러나 다름없게 된 나이트 시티를 넘어
브레인로트(Brainrot) 밈과 군중의 과도한 확증편향에 절여진 현대 사회를 비웃는 통찰일지도 모른다.
'BD에는 이야기가 없다'는 로만의 말처럼
로만이 D를 따라다니며 찍은 BD나 다름없는 영상 속
D의 개인적인 복수의 서사, 폭도들의 살인에는 사람들이 빠져들 수 있는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엣지러너 2에서, 어쩌면 엣지러너 1의 데이비드와 메인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카프리콘 프로젝트'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지만
탈리아, D, 위크를 비롯한 인물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로만이 있었다.
로만이 대표하는 순수함의 부재는
D와 유피, 그리고 폭도들의 폭주로 이어졌고
과보호적인 아비다, 기업으로서의 윤리에 매몰된 아비다의 남편으로 인해
위크는 아비다를 잃었고 탈리아는 실험체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거시적 관점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메가코프와 나이트 시티의 비극과도 일맥상통한다.
로만이 D의 폭도들로부터 빠져나온 뒤에 카메라가 그들의 이야기를 비추는 일은 없었지만
카메라 필름 바깥에서 열두 살 로만이 D와 탈리아에 대해서 겪고 들었던 것들
나이트 시티에서 그들이 과거에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좋은 영화에는 경계가 없다'는 로만의 말처럼
필름을 그저 시청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필름 너머의 사람들과 교감한 로만의 '순수함', 즉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계'라는 답이
결국 그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을 구하러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 '관계'라는 답은
데이비드와 루시가 겪은 비극적인 엔딩과 달리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해피 엔딩으로 그들과 우리 모두를 이끈다.

엣지러너 2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작인 엣지러너 1, 그리고 사이버펑크 2077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엣지러너 2는
'우리는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가' 라는 답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펑크 시리즈에서 소실된 인간성의 본질이란 '순수함'에 기반한다.
이 인간성에 대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교양과 정신적 특성'을
근대 철학자들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로서의 인간다움을
현대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공감과 감정'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 인간성이 소실되는 순간
오직 거대 기업이 가진 자본의 논리와 자극적인 폭력에 물들어
일거리를 따내기 위해 크롬을 한계 너머까지 확장해 사이버 사이코가 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내몰린 지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로만은 카메라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다'고 외친다.
나이트 시티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다고 한다.
'죽어서 전설이 되거나, 살아서 잊혀지거나'는 사이버펑크 시리즈를 아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통용되는 유명한 문장이다.
끝내 죽어서야 사랑을 지켜낸 데이비드와 달리
로만은 살아서 '언젠가'를 기약할 수 있는 관계를 지켜냈다.
마지막에 이르러 로만은 탈리아의 미소를 카메라에 담아낼 수 없었다.
콧등 아래 입을 비롯한 턱 전체의 크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웃는 모습을 촬영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웃고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들 모두의 미소를 찍은 로만은
그제서야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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